[토니로키] 무제

짧은 글 2016. 2. 10. 00:50

악인이 속죄를 하면 그 죄는 씻겨나간다고들 한다. 아마도 그 말은 죄 지은 자가 제 악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지어낸 말일 것이다. 회개했다 눈물 흘리며 기도하는 것은 그저 위선이며 거짓 면죄부일 뿐이다. 그 어느 것도 진정으로 죄인을 구원할 수 없다. 속죄함으로써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은 그저 성자를 모욕하는 일 밖에 되지 않는다. 악인이 참회를 통해 천국으로 가는 길을 열 수 있었다면, 모든 성인들이 그 길을 택했을 테다. 죄를 짓고, 눈물을 흘리며 죄사함을 받고 다시 죄로 손을 더럽히더라도, 진실로 참회했다며 눈물을 떨구며 고해성사를 하면 되었을 테니.

 

로키는 피우던 담배를 잔 안에 던져 넣었다. 캘버라에서 만난 노인의 말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신이고 나발이고 애초에 구원받을 수 없는 존재도 있는 법이요. 악한이라면 더더욱 그렇지. 죽고 나선 끓는 기름에나 던져질 테니……. 그가 한 말 중에 틀린 것은 없었다. 대체 자신은 무엇을 기대한 것인가. 로키는 코웃음을 쳤다. 잠시나마 타인의 인정과 애정을, 하다못해 연민의 눈길 한 조각을 갈구했었던 제가 비참했다. 세상은 언제나 다정한 무관심으로 그를 비추었고, 그 공허함 속에서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았다. 술과 약, 그리고 백만장자의 변덕이 끝나지 않기를 기도하는 일.

 

궁상맞게.” 토니가 그의 손에서 잔을 뺏으며 혀를 찼다. 로키는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마치 그가 온 것을 보지 못했다는 듯한 행동이었다. 토니는 로키를 눈끝으로 훑었다. 여전히 음울한 청교도 목사 같은 꼴을 해서는, 허구헌날 술 아니면 담배다. 모르긴 몰라도 약도 엄청나게 해댈 것이다. 하지만 토니는 그를 방관했다. 그에게 불면과 PTSD를 불러온 짓에 대한 복수는 아니었다. 그저 로키가 자청해서 저를 그 구렁텅이에 밀어넣고 있다는 것과, 이 짓을 그만둘 의지가 전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토니는 로키의 위스키 잔을 한 쪽으로 멀리 치우며 그의 곁에 다가와 앉았다.

 

담배냄새 날 거야.” 로키가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상관 없어. 나도 대학때 줄기차게 피워댔는걸.” 대수롭지 않다는 투로 대꾸하며 그는 로키의 허리에 손을 감았다. 로키는 움찔하면서도 그를 밀어내지는 않았다.

 

지금은 안 피우잖아.” 그가 느릿하게 말했다. 토니는 저를 바라보는 로키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단정하게 빗어넘긴 머리칼과 끝까지 채운 단추는 어딘가의 서생이지만, 탁하게 흐려진 녹색 눈과 취기로 붉어진 뺨은 영락없는 뒷골목 정키다. 그 부조화에 토니는 어쩐지 웃고 싶어졌다. 삼 년 전에는 지구를 제 손 안에 넣겠다고 뉴욕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놓던 반신이, 이제는 술과 약에 취해 제 타워에 얹혀살고 있다. 그는 묘한 성취감을 느끼며 물었다.

 

내가 싫어할까봐 걱정이라도 한거야, 허니?”

 

“…내가 기댈 수 있는 건이제 당신의 변덕 뿐이니까.” 로키의 말에 토니는 인상을 찌푸렸다.

 

알아들을 수 있게 말해.”

 

당신이 그랬잖아. 왜 나를 이 타워에 들이고 쉴드로부터 숨겨줬냐고 물었을 때.”

 

전용 렌트보이로 쓰고 싶다고 대답했던 것 같은데.”

 

“…넌 그렇게 말한 적 없어. 날 그렇게 취급한 적도 없고.” 로키가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술병을 만지작거리던 토니의 손을 가져가 입에 넣었다. 토니는 가만히 제 손가락을 핥는 로키의 혀를 느낄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행동한 건 오히려 나였지.” 토니의 손을 놓아준 로키가 메마른 목소리로 덧붙였다. 토니는 이렇다 할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이러한 자조에 어울려주는 것은 그의 전문 분야가 아니었다. 대신에, 그는 로키에게 키스했다. 여느 때와 같은 키스. 언제나처럼 그에게서는 알코올 대신 희미한 겨울 나무의 냄새가 났다. 입술에서 뺨으로, 뺨으로 목덜미로 타고 내려오며 토니는 로키에게 속삭였다.

 

내 변덕은 끝나지 않을 거야.”

 

당신 입은 너무 가벼워서 내가 믿을 수가 없어.” 로키가 토니의 머리칼을 만지작거리며 대꾸했다. 반쯤 뭉개진 발음으로 웅얼거리는 말이었지만 토니는 어려움 없이 그것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토니는 로키의 목덜미를 살짝 깨물었다. 이것도 당신의 변덕인가. 로키는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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